📑 목차
서문 | 겨울을 건너는 새에게 벌어진 변화
큰고니는 겨울이 되면 북쪽의 번식지를 떠나 비교적 온화한 지역의 호수와 하천, 논과 습지가 이어진 공간으로 이동한다. 나는 이 이동이 단순히 추위를 피하기 위한 계절 이동이 아니라, 수십 년 이상 유지되어 온 생존의 약속이었다고 생각한다. 큰고니는 매해 새로운 장소를 찾아다니는 새가 아니다. 한 번 안정된 겨울 서식지를 기억하면, 그곳을 반복해서 찾아가며 계절을 건너는 방식을 선택해 왔다.
과거의 겨울 터전은 먹이와 휴식이 동시에 가능한 공간이었다. 얕은 물에서 먹이를 찾고, 비교적 안전한 수면 위에서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조건이 자연스럽게 갖춰져 있었다. 큰고니는 이 환경을 신뢰하며 이동했고, 그 신뢰가 깨지지 않는 한 매년 같은 겨울을 반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큰고니는 더 이상 같은 겨울을 안정적으로 건너기 어려워졌다. 물의 흐름은 달라졌고, 먹이를 찾는 방식은 점점 비효율적으로 변했으며, 머물 수 있는 공간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변화는 갑작스럽게 나타나지 않았지만, 매년 조금씩 누적되며 큰고니의 겨울을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이 글에서는 큰고니가 겨울철 서식지를 잃게 된 과정을, 어느 한 사건이나 단일한 원인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물과 땅, 인간 활동이 얽히며 만들어낸 연결된 변화의 흐름 속에서, 큰고니가 어떻게 겨울을 잃어가게 되었는지를 차분히 풀어보고자 한다.

1단계. ‘머물 수 있는 물’이 사라지다
큰고니의 겨울 서식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물의 존재다. 나는 이 물이 단순히 얼지 않는 수면이 아니라, 오랜 시간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얕은 물 환경이라고 본다. 큰고니는 깊은 물 한가운데에서 생활하는 새가 아니다.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수심, 먹이를 찾을 수 있는 바닥 구조, 휴식이 가능한 수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맞아야 비로소 겨울 서식지로 기능할 수 있다.
과거의 하천과 호수는 수위 변동이 비교적 완만했고, 일부 구간은 겨울에도 얼지 않아 큰고니가 쉬고 먹이를 찾기에 적합했다. 물의 높낮이는 계절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절되었고, 큰고니는 그 리듬에 맞춰 자리를 옮기며 머물 수 있었다. 이러한 환경은 큰고니에게 예측 가능한 겨울을 제공했다.
하지만 하천 정비와 수자원 관리 방식이 바뀌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수위는 인위적으로 조절되었고, 물은 빠르게 흐르거나 갑자기 줄어들었다. 얕은 물 구간은 사라지고, 깊거나 흐름이 강한 수면만 남았다. 큰고니에게 이 변화는 단순한 불편이 아니라, 머무를 수 있는 조건 자체가 사라진 공간으로의 전환이었다.
2단계. 먹이가 ‘보이지 않게’ 줄어들다
큰고니는 수생식물의 뿌리와 줄기, 논과 습지에 남아 있는 식물성 먹이를 주로 이용한다. 나는 큰고니가 먹이를 까다롭게 고르는 새가 아니라, 먹이가 예측 가능하게 존재해야 하는 새라고 생각한다. 겨울철에는 체온 유지와 이동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먹이를 찾는 데 드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생존은 급격히 어려워진다.
문제는 먹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접근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하천 바닥은 준설로 깊어졌고, 습지는 매립되거나 장기간 건조 상태로 유지되었다. 논은 겨울에도 물을 빼는 방식으로 관리되기 시작했다. 먹이는 여전히 존재할 수 있지만, 큰고니의 부리 길이와 섭식 방식으로는 더 이상 쉽게 닿지 않는 위치로 이동했다. 이는 섭식 효율을 근본적으로 떨어뜨리는 변화였다.
이 변화는 큰고니의 겨울 체력 유지에 직접적인 타격을 주었다. 먹이를 찾기 위해 더 오래 움직여야 했고, 이는 곧 체력 소모와 면역력 저하로 이어졌다. 겨울을 버티는 힘은 이렇게 눈에 띄지 않게 약해졌다.
3단계. ‘쉴 수 없는 겨울’이 되다
큰고니는 낮 동안 먹이를 찾고, 밤에는 비교적 안전한 물 위에서 쉰다. 나는 이 휴식 공간이 겨울 생존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본다. 충분히 쉬지 못하면, 아무리 먹이가 있어도 겨울을 넘기기 어렵다. 휴식은 에너지 보충의 핵심이다.
그러나 겨울 서식지 주변의 인간 활동은 점점 늘어났다. 야간 조명, 차량 이동, 낚시와 레저 활동은 큰고니에게 지속적인 긴장 상태를 강요했다. 특히 밤 시간의 방해는 큰고니의 휴식 패턴을 직접적으로 무너뜨린다. 어둠 속에서의 안정은 더 이상 보장되지 않았다.
큰고니는 위협을 느끼면 쉽게 날아오르지만, 문제는 이 행동이 반복될수록 에너지 소모가 눈에 띄게 커진다는 점이다. 충분히 쉬지 못한 개체는 추위와 질병에 더 취약해진다. 결국 겨울 서식지는 물과 공간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머물 수 없는 장소로 변해 갔다.
4단계. 전통적인 이동 경로의 붕괴
큰고니는 매년 무작위로 이동하지 않는다. 나는 이 새가 세대에 걸쳐 축적된 이동 경로의 기억을 이용한다고 본다. 특정 하천과 호수, 논 습지는 하나의 네트워크처럼 연결되어 있었고, 그 순서와 위치는 오랫동안 유지되어 왔다. 이 구조는 이동의 안전망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 중 일부가 사라지자 전체 이동 구조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중간 기착지가 줄어들면서 이동 중 휴식이 어려워졌고, 일부 개체는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다. 겨울 서식지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이동 경로 전체가 불안정해진 것이다.
이 단계에서 큰고니는 새로운 서식지를 탐색해야 했지만, 대체할 공간은 이미 농경지 전환, 개발, 수자원 시설로 사용되고 있었다. 선택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이동은 점점 더 위험해졌다.
5단계. 특정 지역 집중과 경쟁 심화
남아 있는 겨울 서식지는 점점 소수의 지역으로 압축되었다. 나는 이 현상이 단기적으로는 개체 관찰이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특정 지역에 많은 개체가 몰리면 먹이 경쟁은 심화되고, 개체 간 스트레스도 커진다. 이는 생존 조건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든다.
또한 밀집된 환경에서는 질병 전파 위험이 높아진다. 한 지역에 문제가 발생하면 대체할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환경 변화의 영향은 즉각적으로 나타난다. 혹한, 수질 악화, 인간 활동 증가가 겹치면 그 결과는 빠르게 드러난다.
큰고니의 겨울 서식지는 이렇게 유연성을 잃은 구조로 고착되었다.
6단계. 겨울 서식지 상실이 남긴 의미
큰고니가 겨울철 서식지를 잃게 된 과정은 갑작스러운 사건의 결과가 아니다. 나는 이것이 물 관리 방식 변화, 토지 이용의 단순화, 인간 활동 증가가 오랜 시간 누적된 결과라고 본다. 이 변화는 한 번에 눈에 띄지 않았지만, 해마다 조금씩 조건을 악화시켜 왔다. 변화는 조용했지만 방향은 분명했다.
큰고니는 이러한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종이 아니다. 대신 안정된 환경을 전제로 이동과 생존 전략을 유지해 온 새다. 그 전제가 무너졌을 때, 큰고니는 새로운 전략을 선택하기보다 머물 수 없는 겨울을 반복해서 맞이하게 된 것이다.
맺음말 | 겨울을 건너지 못하는 새가 보내는 신호
큰고니가 겨울을 보내기 어려워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조류 보호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이 변화가 우리가 물과 땅, 그리고 계절의 흐름을 어떤 방식으로 관리해 왔는지를 그대로 드러내는 결과라고 본다. 큰고니는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빠르게 적응하는 종이 아니다. 대신 오랜 시간 유지되어 온 조건을 신뢰하며 이동하고, 그 리듬에 맞춰 겨울을 건너는 새다. 그런 큰고니가 더 이상 같은 겨울을 반복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은 환경의 기본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다.
나는 큰고니의 겨울 서식지 상실이 자연이 보내는 조용한 경고라고 생각한다.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물의 흐름과 토지 이용, 인간 활동이 계절의 균형을 무너뜨린 결과가 누적되어 나타난 신호다. 겨울을 버티지 못하는 환경에서는 큰고니뿐 아니라, 다른 이동성 조류와 수생 생물 역시 같은 문제를 겪게 된다. 눈에 띄는 멸종보다 먼저 나타나는 것은, 이렇게 계절을 건너지 못하는 현상이다.
큰고니의 이동 경로가 점점 끊기고 있다는 사실은, 인간이 만든 공간이 더 이상 계절의 리듬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나는 이 문제가 한 종의 보호 대책으로 해결될 수 없다고 본다. 겨울을 살아낼 수 있는 환경을 다시 만드는 일은, 곧 우리가 자연과 시간을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큰고니는 말없이 사라지고 있지만, 그 과정은 분명한 질문을 남기고 있다. 우리는 과연 계절이 머물 수 있는 공간을 아직 남겨두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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